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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학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한국 역사학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수백 년 간 계속되었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있었던 시기였다.해외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냉전체제에서 약소국들이 미국과 소련에 편승했던 것과 유사했다.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통치자가 난세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어진 재상을 발탁하여 보좌를 받고 있다는 것인가.다산의 참선비론을 보자.
(‘속유론) 율곡과 다산의 참선비론은 일치한다.아무리 보아도 본인 능력은 말할 것 없이 어진 재상이나 참선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